엄마의 죽어서 복수

엄마의 죽어서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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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어서 복수(?) 


요 몇 달 간 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였다. 


미리 엄마의 임종을 예견하였기에 장례를 치르는 일이나 그 이후의 사소한 정리는 생각하고 있었기에 


엄마가 돌아가시면 차분하게 정리를 하며 엄마의 명복을 여동생과 함께 빌면서 나보다 더 서러워하는 


여동생을 달래는 목까지도 준비를 해 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생각하여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엄마는 오래 전부터 간암으로 투병을 하였다. 


보통 말기 환자들의 경우 혼기에 찬 아들이나 딸이 있으면 임종을 하기 전에 며느리며 사위를 보려고 


안달을 부리기 마련이지만 이상하게 우리 엄마는 나는 물론 여동생도 혼기에 찬 나이인데도 결혼을 하라고 권유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결혼을 미루었다가 자신이 죽고 나면 유언장을 보고 혼인을 하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이 어미가 죽거든 집에 장롱 밑에 미리 적어 둔 유언장이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그 유언장에 


따라 행동을 해 주길 바란다. 죽기 전에 그 유언장을 보는 일은 없어야 하며 또한 내 유언을 


저버린다면 이 어미는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 하고 구천을 헤맬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여라.” 


엄마는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바로 정신만 들면 아픔 속에서도 나만 불러 그 말을 수차례 반복하였다. 


아마 악화가 되고 임종 때까지 두 달여 동안에 거의 스무 번 이상을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면서도 


여동생이 오기라도 하면 하던 말을 중단하며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여동생에게는 비밀이란 뜻의 묘한 행동을 하였다. 


난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이고 왜 여동생이 나타나거나 옆에 있으면 아프다며 신음만 하면서도 


여동생이 자리를 비우거나 없으면 또 <이 어미가 죽거든 집에 장롱 밑에 미리 적어 둔 유언장이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그 유언장에 따라 행동을 해 주길 바란다. 죽기 전에 그 유언장을 보는 일은 없어야 하며 또한 내 유언을 저버린다면 


이 어미는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 하고 구천을 헤맬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여라.>는 말을 되풀이 하였다. 


난 그동안 병원과 집을 오고 가면서 여동생과 교대로 간병을 하다가 큼이 나면 집에 가서 


샤워를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엄마가 말을 한 그 문제의 유언장은 엄마의 엄명에 따라 손도 못 대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한 궁금한 것이 있었다면 그 유언장에 나와 여동생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며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떤 연유로 혼자서 우리 남매를 키웠는지 적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도 살아생전에 


입으로 우리에게 비밀을 밝히고 어떤 사람인진 모르지만 아버지 앞에서 마지막 운명을 끝냈으며 하는 


소망도 가지게 하였으나 건강할 때에나 그 전에 힘들어서 고생을 하면서도 입에서 아버지에 대한 말을 


일언반구도 없었기에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가며 간병을 하며 직장에 다니는 힘든 일상을 해 왔다. 


그랬다 나나 여동생은 엄마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뻥끗도 못 하였다. 


아마 내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당시 엄마는 제법 규모가 큰 술집을 운영하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을 하여 방석집이었다. 


젊은 여자 몇 과 내 기억으로 스물도 안 된 계집 몇을 집에 거느리고 하는 방석집이었지만 손님은 심심찮게 많아 


물질적인 여유가 충분하였으나 당시에 나에게 가장 큰 불만은 여름방학이면 다른 아이들은 


아빠엄마와 함께 피서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우리 엄마는 피서 여행은커녕 그 흔한 놀이공원에도 한 번 안 데리고 갔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 여름방학이 되자 나와 나의 여동생은 나와 공모를 하여 엄마에게 아빠를 찾아서 피서를 가자고 조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엄마는 한숨만 푹푹 쉬더니 그 때부터 여름방학에 끝나는 날까지 안 들어가든 손님방에도 들어갔고 밤이면 술에 찌들어 집으로 오기 일쑤였다. 


거기에 자극을 받은 나와 내 여동생은 그 후론 다시는 피서여행이니 아빠 이야기는 입에 담지를 않았다. 


또 당시나 그전 그리고 그 후로도 누가 우리를 보고 엄마에게 아이들 아빠가 누구며 어디서 뭐 하냐고 


묻기라도 하면 화부터 버럭 내어 상대방을 아주 민망하게 만들었기에 우리 엄마에 대아여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엄마 앞에서 우리 남매의 아빠에 대하여 묻거나 알려고 하는 우를 범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만큼 우리 엄마의 우리 남매에 대한 비밀은 배일에 가려진 문제였다. 


엄마가 병세가 위급하면 살아야 한다고 기도를 하면서도 막상 고비가 지나면 어서 빨리 임종을 하면 


우리 남매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풀 수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였지만 정말이지 질기고 질긴 것이 


목숨인지 갈 듯 말 듯 하면서도 엄마는 끈질기게 생명선을 연장하며 우리 남매에게 힘든 나날을 보내게 하였다. 


아니 우리 여동생이게 더욱 더 힘들게 말이다. 


나야 아침에 눈을 뜨면 직장으로 출근을 하였고 회사의 업무를 마치면 병원으로 가서 여동생에게 


밥도 먹고 눈도 잠시 붙이고 오라고 하고는 엄마의 병실에 앉아 다른 환자들의 간병인들과 노닥거리다가 


여동생이 밥이나 먹고 바로 오던지 아니면 눈을 잠시 붙이기 쉬운 중환자 병동의 보호자 대기실 


한쪽에서 웅크리고 자다가 오면 교대를 하고 집으로 와 두 다리 뻗고 자면 그만이었지만 여동생은 


엄마가 일반 병동에 있을 때면 간이침대에서 웅크려 자야하였고 엄마가 위독하여 중환자 실로 옮기기라도 한다면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정말이지 힘든 간병인 노릇을 하였지만 어쩌다가 엄마가 


정신이 들면 이상하게 여동생을 미워하며 눈총을 주어 나나 여동생으로 하여금 힘들게 하였지만 


여동생은 고맙게도 불평불만 한마디 안 하고 고분고분하게 엄마 말에 순종을 하며 간병을 하였다. 


물론 어려서부터도 여동생이나 나나 엄마 말이라면 고분고분하게 잘 듣고 하지 말라는 일이라면 


아무리 좋은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지 않았던 우리 남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동생의 간병은 효성이 여간 지극하여 효녀가 아니라면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성을 다하였다. 


고등학교를 수석에 가까운 성적으로 졸업을 하여 졸업생 대표로 교육감 상을 받을 정도였고 대학을 가기 위한 


수능시험 성적도 전국 상위 5%에 들 정도로 우수한 성적이 나왔지만 본고사를 앞두고 엄마가 간암인 것을 알고는 


엄마를 위하여 간병을 한다며 대학 입학까지 포기를 하고 엄마의 간병에 매달렸으니 얼마나 지극 정성이며 착한 딸인가. 


병원에서 간병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며느리 깜이라는 말이 나 돌 정도였다. 


그도 엄마의 간병을 5년이나 하였으니 말이다. 


멋! 


멋을 좀 부리라고 돈을 줘도 옷을 사 입거나 머리치장 훅은 화장품을 사서 바르는 것이 아니라 


여동생은 어떡하든 간에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에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며 아니면 간에 좋다는 말만 들으면 


그 것을 어떡하든 간에 손에 넣었고 그리고 엄마에게 먹이는 정말이지 효성이 깊은 동생이라 아들을 둔 사람으로서 


병원에 누가 입원을 해 있는 부모라면 모두가 며느리 깜으로 탐을 내는 그런 착한 여동생이었다. 


그럼 그렇게 간병을 하는 딸에 대한 엄마의 행동은 어떠하였는가. 


정말이지 친딸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구박을 하였다. 


아니 구박 정도가 아니었다. 


자신이 몹쓸 병에 걸린 것도 다 자기 딸인 내 여동생 탓으로 돌렸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사서 먹여줘도 


팽개치기 일쑤였으며 베개나 수저 등 잡히는 것이 있기라도 하면 마구 던지는 포악함을 보였었다. 


그러면 내가 중간에 나서서 엄마를 다독거려서 기분을 풀어 주어야 하였고 울고 있는 여동생도 다독거려주어야 하였다. 


그러니 혼기가 닥쳤지만 연애를 하여 결혼을 할 꿈은 꾸지도 못 하고 직장과 병원을 쳇바퀴 돌듯이 


직장에서 업무를 마치자마자 곧장 병원으로 가야하는 고달픈 생활을 무려 5년을 하여야 하였고 


여동생 역시 5년간 이유 없는 투정을 받아가면서 엄마의 간병을 하며 수발을 들어야 하였다. 


나야 그래도 아침에 여동생이 전날 나와 교대를 하고 집으로 와 쉬면서 밥이며 밑반찬을 해 두어서 


그것을 먹고 또 직장에서 점심도 먹었으며 저녁에도 여동생이 집에서 돌아오면 집으로가 밥을 먹었지만 


여동생은 아침이면 엄마가 먹다 만 밥에 다른 환자들이나 간병인들이 먹다 남은 밥이며 밑반찬으로 요기를 하였고 점심이면 


컵 라면으로 요기를 하였으며 저녁에야 겨우 나와 잠시 교대를 하여 집에서 쉬면서 밥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다른 환자들이나 간병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엄마를 좋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간호사들이나 의사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5년의 긴 병원생활도 나의 벌이로는 병원비도 턱없이 부족할 정도였지만 다행히 엄마가 술집을 운영을 하며 넣어둔 


보험의 보험금을 수령을 하면 병원비는 물론 여동생의 간병 수고비 정도까지 나와서 병원 생활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러니 나의 월급이며 엄마가 사 둔 3층짜리 상가의 임대료는 그대로 저축을 할 수가 있었고 


그 돈을 나는 여동생 결혼 비용으로 생각하고 꼬박꼬박 저축을 하였고 내 월급은 월급대로 따로 저축을 하여 나의 결혼 자금으로 여겼다. 


그렇게 여동생을 못 살게 굴던 엄마도 죽음 앞에서는 어쩌지 못 하고 운명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구박을 받으며 간병을 하던 여동생이 나보다 더 슬퍼하는 가운데 엄마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마음의 정리를 하고는 엄마가 말한 유언장을 장롱 안 깊은 곳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유언장이란 것이 하나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1이라고 쓰여 진 봉투에는 <하나씩 이행을 한 다음에 다음의 봉투를 개봉하여야지 그렇지 않고 


한꺼번에 모두 개봉을 하여 엄마가 구천을 헤매는 꼴을 당하지 않게 해 주길 바라며 절대 유희는(여동생 이름임)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보여 엄마를 욕되게 하지 말기를 바라니 그리 알고 순서대로 개봉을 하라>라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글이 써 있었다. 


난 이해가 안 되었지만 엄마의 지시에 따라 1이라 쓰여 진 유언장을 개봉을 하였다. 


“!”난 그만 그 내용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게 꿈이란 말인가. 


아니 이 유언장을 쓰면서 엄마의 정신이 오락가락 하였단 말인가. 


엄마의 필체와 끝에 쓰여 진 날짜로는 엄마가 병이 종합검사를 받은 직 후였고 당시에는 정신이며 다른 문제가 크게 없었고 


오로지 헛구역질이 심하여 종합검진을 받고는 마치 무슨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술집이며 모든 것을 이상하게 


정리를 하던 아주 정상적인 상태였던 것이 분명한데 어찌 이런 몹쓸 짓을 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 내용은 간단하였으나 충격적인 부탁 아니 명령이었다. 


<이 유언장을 개봉하는 즉시 유희를 강간하라. 그리고 나서 다음 2번 유언장을 개봉하여라. 


강간을 하지 않고 유언장을 개봉하면 나 영원히 구천을 헤맬 것이다. 2002년 12월 초>라는 내용이었다. 


정말이지 황당한 내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들에게 자기의 친딸을 강간을 하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말인가! 


친딸을 좋은 혼처를 구하여 시집을 보내라고 하여도 그저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렇게는 하지 못 할 지언 정 


아들에게 친여동생을 강간을 하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말인가 말이며 또 무슨 법이란 말인가. 


도저히 엄마의 지시를 시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유언장을 모조리 읽을 수도 없는 혼란한 시간이 흘렀다. 


삼오도 지나고 직장에 나가기 시작을 하였고 여동생은 엄마의 병수발을 들면서 못 잔 잠에 포원이 졌던지 먹고 자고만 반복을 하였다. 


그렇게 덧없이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으나 나나 여동생의 신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유희야 우리 맥주 한잔 어때?”토요일 오후 일찍 집으로 온 나는 여동생을 깨워 거실로 불러내었다. 


“오빠 엄마 춥겠지?”여동생이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거실로 나왔다. 


“아니야 엄마 우리 유희가 잘 해줘서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하고 말을 하자 


“흑흑흑 오빠 엄마가 보고 싶어 흑흑흑”여동생이 내 품으로 안기며 흐느꼈다. 


“이제 엄마 곱게 보내드려”난 여동생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끌어안았다. 


“흑흑흑”여동생은 내 품에 안겨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난 유언장이란 묘한 포장을 쓴 엄마의 유령에게 유혹을 당하고 있었다. 


여동생을 끌어안고 나의 가슴에 맞닿은 여동생의 젖가슴 탄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여동생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싶은 욕망까지 생겼다. 


아니다! 이건 아니다! 암 아니고말고! 


속으로 같은 말을 되뇌며 여동생의 등을 끌어나고 두드렸다. 


하지만 이놈의 더러운 마음은 엄마의 유령이 쓰인 유언장의 유혹을 견디지 못 하고 여동생의 하체에 하체를 밀착시키며 


하복부의 그놈은 점점 발기되었고 어서 해방을 시켜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오빠 엄마 저승에선 아프진 않겠지?”여동생이 물었다. 


“그....그래”난 간신히 여동생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있었다. 


“오빠 왜 그래 읍”여동생이 고개를 들며 말을 하려는 순간 그만 나의 입술을 여동생의 입술이란 것을 망각을 하고는 여동생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고 말았다. 


“팍! 퍽! 퍽!”여동생이 토끼눈을 하고 나의 가슴을 쳤다. 


“쯥~쯥~”하지만 난 여동생의 목을 팔로 감고 꼼짝도 못 하게 하고는 여동생의 입술을 게걸스럽게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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