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스런 우리부부의 성생활3
초가을로 아직 단풍이 들진 않았지만 내장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늘은 파랗고 고추잠자리가 맴돌아 전형적인 가을 초입이라 좀 수그러 들긴하였지만 무더운 편이었다.
우리 부부는 가로수가 무성하여 그늘진 내장사 입구 길을 산책중이었다.
화장실이 보이자 아내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갔다 오더니
“난 벗어버렸다”하며 핸드백을 열어 보여주는데 핸드백엔 아내의 검은 팬티가 말려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가로수길 옆에 비치된 운동기구들이 있었고 아내는 운동기구중 자전거안장을 손수건으로 닦더니 자전거타기 운동에 열심이다.
남들이 보았을땐 자전거타기 운동이지만 비록 치마를 입긴 하였지만 팬티를 벗고 산책하는 그 자체가 흥분된 상태였는데 자전거타기 운동기구가 보이자 치마에 덮힌 앞이 삐쭉하고 위로 튀어난 자전거안장을 ㅂㅈ마찰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공공장소에서 말하자면 자위행위라 얼마나 흥분되었겠는가?
얼굴에 홍보를 띤체 거칠어진 숨을 몰아 쉬더니
“오랫만에 운동하니 힘드네 하학~”하며 운동용 자전거에서 내리면서 자전거 안장을 가리킨다.
그 안장에는 ㅂ짓물이 제법 흥건하였다.
“당신 제법이네. 올가즘 느꼈구나. 내가 미치겠네”
“응, 수많은 사람있는데서 한다는게 더 짜릿했어 휴~”
주차된 차로 돌아가서 미끈거리는 ㅂㅈ를 핥았고 빨아주니
“아흑 아~ 그만해. 사람들 볼라”
“그래서 더 흥분돼지 않아?”
“그건 당연하지만 아~흑”
난 내 입술에 묻은 ㅂ짓물을 아내의 입술로 빨게했더니.
“맛은 없네ㅎㅎ”
변산반도로 차를 몰아 바닷가를 산책했다.
남들은 변산반도 비경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아내는 수 많은 사람들을 배경삼아, 바위에 앉아 치마를 들춰주고
ㅂㅈ속살을 드러내줘 연신 카메라에 담게 했다.
물론 배경은 흐릿하고 ㅂㅈ는 선명하게 담았지만.........
사진을 찍는 내 거시기에서도 액체가 흘러내려 바지를 적시기에 충분했다,
이미 산책을 나서기 전에 난 아내 팬티를 입었고 뽕을 안넣은 브라도 걸쳤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를정도의 여성용 셔츠에 칠부 바지, 살색 스타킹에 여성용 단화도 신었던 것이다.
남녀 공용같은 옷이지만 아내옷을 입고 외출했다는 자체가 흥분되었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는 언제 샀는지 가슴이 깊이 파이고 치마는 짧은 야한 잠옷과 가터벨트에 긴 스타킹까지 내게 입혔고 빨간 킬힐까지 신겨 날 흥분 시켰다.
난 소라넷에 아내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전거에 앉아 운동하는 모습, 치마를 들춰 노 팬티의 모습, 안장에 묻은 ㅂ짓물의 사진과 바닷가에서의 노출장면까지 차례대로 올렸더니 댓글이 폭발하는 수준이었다,
- 누나 너무 이뻐요. 자주 올려줘요
- 한번만 그 유방 빨게 해줘요
- 그 자전거 꼴렸겠다. 내가 자전거가 되어 드릴께요
-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저 자전거 안장에 비벼댔을까?
- X할 년, 나 같은 놈 놔두고 뭔 염병이래
- 사진 찍은 저 놈은 꼴려서 어떻게 박았을까 등등
댓글이 쏟아졌고 아내는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가며 음미했다. 아예 ㅂㅈ에 손가락을 넣고 부비며 날 불러 내 거시기를 빨기 시작했다.
우리의 모습은 음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거의 하루 종일 탱탱했던 내 거시기는 아프면서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뿜어내기 시작했고 아내는 입으로 다 받더니 화장실로 달려가 입을 행구고 나왔다.
난 아내의 입술부터 시작하여 가슴을 천천히 애무했고 손 가락으로는 수풀을 헤치고 노를 천천히 저어 나갔다.
“아~ 아~ 아흑” 아내는 맘껏 소리 쳤고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키스하며 서로의 젖가슴과 성기를 부드럽게 애무해 주며 오늘의 잔치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부부는 여장과 야외노출로 흥분감도가 극치에 다달아 아내는 굳이 삽입ㅅㅅ를 안해도 보통 올가즘을 2~3회, 나는 가급적 사정 안하고 즐기는 생활을 이어갔고 최고조에 달해 어쩔수 없을 때는 한번으로 만족하는 원칙 만큼은 꼭 지꼈다.
남자의 진정한 ㅅㅅ는 사정을 안하고 쾌감만 최고조로 달하게 하는것이라 했다.
우리 부부는 참 이상하리 만큼 신기했다.
먼저 난 아내 옷만 입으면 거시기가 섰다. 동안 수없이 입고 걸쳤는데 그럴 때 마다 같았다.
오늘도 아내 옷으로 풀업을 하는데 거시기가 반응했다.
“비아그라가 따로 없네 호호”
“그러게”
내가 하고 싶으면 아내 옷을 입었고, 아내가 하고 싶을 때면 이옷을 입어보라고 권할 정도로 나의 여장은 의사를 전달하는 일종의 신호가 되어버렸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선 알몸으로 지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데 속옷을 벗은채 웃옷을 걸치고 밖에만 나가면 즉각 반응이 온다는 것이다.
“당신도 이 팬티 한 장이 여성용 비아그라구먼”
“그러게요”
일본에 출장갈 일이 생겨 같이 가자고 하였더니 아내는 싱글벙글이다.
길지 않은 2박3일 일정인데 우린 콧노래를 부르며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지사에 들렀다가 도쿄에서 버스로 한시간 정도에 위치한 치바대로 향했다.
에이꼬교수는 나와 동갑내기인 생물학전공 교수로 발랄한 여성이었고 한국에 올때면 우리집에서 묶을정도로 아내와도 무척 친하게 지냈다.
학회에서 에이꼬를 만난지 15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성임에도 지극히 의례적인 가벼운 포옹과 악수 이상의 행위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절친이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럼없이 서로의 일상적인 생활 얘기까지 하는 사이였다.
하루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남편은 불쌍하게도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못해 해외여행을 한번도 간적이 없고 CD성향이 있다고 뜬금없이 밣혀 날 놀라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친해졌다.
“에이꼬, 전에 남편분이 CD라고 들었는데 요즘도 그러나요?”
“네. 그래요 그런데 왜 궁굼하죠”
“실은 나도 가끔씩 CD를 즐기거든요”
“어머! 아내도 알아요?”
“네 아내가 도와준답니다”
“오늘 저녘 부부끼리 만날 수 있을까요?”
“그래요 남편에게 물어보고 연락드리죠”
한 시간쯤 지나서 에이꼬로부터 남편이 좋다고 한다는 전화가 와서 숙소인 신쥬꾸호텔 카페에서 저녘 7시에 만나기로 했다.
오후에 아내의 일본 관광을 위해 우린 신주쿠에서 유명한 하나조노신사를 갔다. 물론 난 여장을 한 채였다.
‘장사가 번성하고 부자가 된다’는 하나노조 신사의 경내로 들어가면 연애운과 부부금술이 좋아 진다는 이토구이나리신사와 여기서 기도하면 뜻하는 일이 잘 풀리고 소원 성취가 된다는 게노아사마신사등 2개의 작은 신사가 있다. 이토구이나리신사에서는 일본 무사 옷과 여자 옷인 기모노를 빌려주는데 우린 둘다 기모노를 입었다.
지나가는 여자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려는데 아내는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해 별수 없이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실례합니다. 사진 좀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재밌는 분들이네요” 아마 아내도 CD로 알고 깜작 놀랫나 보다.
분명 여자인데 굵직한 남성 목소리이니......
아내에게 커다란 남성 성기모양 목재탑을 배경으로
“여기서 헌컷하면 사진 잘나오겠다 자~ 가슴드러내고” 아내는 기모노를 벌리고 포즈를 취한다
“이번엔 ㅂㅈ가 나오게” 기모노 아래 깃을 올리고 찰캌
남자 성기모양에다 기도하는 여성이 있어 배경삼아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거대한 성기있는데서 찍을 때 저게 당신거로 내게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부부금술이 좋아진다는 효험이 있네. ㅋㅋ ”
“그럼 엄청 꼴렸겠네”
“응”
그렇게 신사에서 놀다가 약속시간이 돼가자 호텔로 향헸다.
저녘무렵 아내가 도와줘서 다른 옷으로 풀업을 하고 카페로 내려갔다.
앉은지 일분도 안돼 두 여자가 들어오데 한 여자는 에이꼬였다.
다른 여자는 에이꼬 남편인지 키는 에이꼬처럼 작은 편인데 체구는 좀 통통한 편 이었다.
서로 반갑게 인사는 나누었지만 그렇게 어색할수 없었다.
한일간 CD의 만남이라 그런지.....
와인을 곁들인 저녘식사를 하며 에이꼬 남편은
“부인이 미인이시군요. 저의 아내를 친구로 잘 대해 주신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겐지상 서로가 어려운 자리인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취향이 저와 같다고 해서 놀랐고 그래서 더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겐지는 엷은화장에 검은 단발머리, 굽 낮은 단화, 일본인이 좋아하는 무릅높이 검은색 스커트를 입어, 튀지 않는 소박한 차림임에도 품위있는 중년 여성으로 보였고 목소리는 베이스톤인 나보다는 가늘긴 했지만 누가 들어도 남자 목소리였다.
“겐지상 어떻게 CD생활을 하게 되셨는지요? ”
“이선생, 저는 어머니와 누나들 틈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누나 옷을 물려 받아 입을 수밖에 없었어요. 집에서는 여자 옷을 입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인지 여자옷이 더 편한게 습관되었고 CD클럽에 가입한 후로는 브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배고픈 시절이 있었는데 우리보다 훨씬 잘 산다는 일본도 그랬나 보다.
하긴 나라가 잘 살지 국민이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가 있는데 오죽하면 누나 옷을 물려받아 입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럽도 있나요”
“다음에 기회있으면 제가 모시고 가죠, 회원제로 하다보니 오늘은 곤란 하구요”
“이선생 오늘 만난 기념으로 제가 선물하나 하죠. 따라오시죠”
가브키쵸 거리는 일본 심장부라 할수 있는 번화가였고 여자 네명은 2번가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서너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샵이었다.
“실리콘 가슴모형이 최근에 나왔는데 하나 사드리죠. 이건 출렁거리고 체온까지 전달되어 진짜 가슴같은 생각이 듭니다.”
크기는 좀 작은 걸 고르라는 겐지의 조언에 아내가 골라주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착용을 해보았다.
색상은 밝은 살색이었고 실리콘이라 무거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벼웠는데 가운데 부분이 파여서 진공상태로 몸에 붙이면 흡착이 되어 움직이자 출렁거림을 느낄수 있었다.
내가 봐도 완벽한 가슴이 형성되었다.
“겐지상 오늘 선물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했더니 세명의 여자들이 모두 웃었다.
에이꼬와 겐지, 둘 다 지방대 교수로 금술 좋은 부부였다.
일본은 성진국이라 불리워 질 정도로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결혼후에는 오직 남편에게 순종한다고 한다.
에이꼬도 외국 여행을 못하는 남편 때문에 혼자 여행을 즐긴다는데 여행내용을 스케치하고 메모하여 남편에게 며칠에 걸쳐 일러 주는 잉꼬 부부였다.
우리 두 부부는 신주쿠 거리를 활보하는데 외국이라 그런지 나의 행동은 너무 자유로웠다.
한국에서는 혹 누구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떨렸는데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여자같았다.
걸을때마다 방금 산 가슴실리콘의 출렁거림도 그렇고 처음으로 신어 본 무려 7cm 높이의 하이힐에 적응하여 히프를 흔들면서 자신있게 걸었다,
“이선생, 너무 아름답습니다” 겐지가 말했고
에이꼬마저 “선생님, 정말 이쁘세요. 몸매도 좋고. 어쩜! 샘나네요”
다리 아픈줄도 모르고 신쥬쿠 가부키초 번화가를 활보하다가 자정 무렵 돼서야 다음을 기약하고 두부부는 헤어졌다.
“겐지상 고소공포증이 있다니 배로 한국에 오시죠. 부산까지 배가 자주 다닙니다. 꼭 한번 놀러오십시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 밤 되십시오”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신사와 신쥬쿠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을 소라넷에 올리고 아내는 브라위로 내 가슴을 만지더니
“어머 말캉말캉 한게 진짜 가슴같애” 하고는 브라를 벗겨 젖꼭지를 애무하더니
“어머머 체온까지 느껴지는데”하며 빨기 시작한다.
난 아무런 느낌은 없었지만 시각적으론 대단한 쾌감이었다.
69자세로 서로의 성기를 애무하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질펀한 ㅅㅅ를 치뤘다.